삶을 뒤돌아보며 

김정렬 (본지논설위원) 

     안개 속을 걸으면 이상하다!

     모든 나무와 돌은 홀로이다.

     서로를 볼 수 있는 나무는 없다.

     각자가 홀로 이다.

      내 삶이 여전히 밝을 때에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개가 내려 앉아

      더 이상 어떤 친구도 보이지 않구나.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 -

짙은 안개가 낀 어두운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그 때 내 뒤를 따르던 자전거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나를 쓰러뜨렸다. 그 충격으로 나는 길옆으로 넘어졌다. 

오른 쪽 얼굴은 피범벅이 되고, 무릎이 아파서 일어 설수가 없었다. 70평생을 살아오면서 격어보지 못한 대형사고 이었다.    

어렵사리 정신을 차리고, “앞을 잘 보세요. 눈이 없어요.”라면서 가해자에게 눈물 섞인 항의를 했다.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거듭 사과를 했다. 

겨우 일어나 피범벅이 된 얼굴로 다리를 절룩거리며 어렵게 학교에 도착을 했다. 

이런 모습에 깜짝 놀라 20대 초반의 공익근무요원이 나에 달려왔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승용차로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보호자 역할도 하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나이는 내 자식들보다  한참 어리지만 행동은 어른스러웠다. 

사실, 나는 평생을 큰 어려움이 없이 살아왔다. 부모님의 덕으로 배울 만큼 배웠고, 안정된 직장을 잡아 매월 나오는 봉급으로 자식들도 가르치며 생활도 했다. 

하지만, 오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흔들리는 정체성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등의 자문을 하면서 새로운 내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각종 언론매체에 글을 쓰고 영자신문도 읽고, 수능영어도 가르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공허함을 달래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에 돌아오는 학교에서의 봉사활동 이었다. 

규칙적인 생활도 하고 보람도 느낄 수 있고, 또 자전거로 왕복 2시간동안 출퇴근을 하면서 체력도 유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얼굴의 한쪽은 붕대로 가려져있고 다리는 절뚝거리고 ……. 설 명절인데도 고향방문은 고사하고 지인방문도 하지 못했다. 

물론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주말이면 거닐던 산책길도 나서지 못하여 운동 부족으로 혈당수치는 올라가고, 신앙생활도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서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서 내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다. 그동안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안전모도 쓰지 않는 등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마디 없는 대나무처럼 살아온 것이다. 세상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이런 나의 어리석음에 파스칼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너는 매일 먹고 또 잠을 자지만 지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굶주림과 수면이 새로 오기 때문이다. 만약 평화와 행복만이 계속된다면 너의 정신은 당장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고통은 정신의 양식이다. 사람에게 고통이 없다면 극히 무능력한 상태가 오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