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과 진영정치

김광병(청운대 사회복지학 교수/본지논설위원)

  현재의 선거권 즉, 투표권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닌 투쟁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평등한 권리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계급이 낮은 자본가들에 의해 시민혁명이 주도되어 성공한 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게 되는 평등사회가 도래하였다. 

  그러나 이 평등사회는 자본을 가진 자와 자본이 없는 자로 구분되어 거래되는 새로운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를 수직적 평등사회이자 형식적 평등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 평등이자 수평적 평등한 사회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법 앞에 평등하여 자유롭고 공정한 상황에서 거래되고 관계되는 매우 상식적인 사회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만들고 유지 발전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정치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의 정당성은 선거를 통해서 시작되는데, 투표권을 가진 모든 사람이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출시켜 그 결과를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자본을 가진 자본가나 빈곤한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모두 같은 한 표의 권한을 행사하기에 투표권 행사 때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로소 가장 수평적이고 가장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는 때가 되는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혁명은 투표로 하게 된다. 국민은 합법적으로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지방의원을 4년마다, 대통령을 5년마다 칼과 총과 같은 투표권을 통해 그 대상자를, 그 정권을 바꿀 것인지 말 것인지를 오롯이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귀한 투표권이 진영정치로 그 참된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진영정치는 이념적 정당이라기보다는 관행적으로 구분되어오던 정당에 유력한 정치인이 중심이 되어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계파정치로 자신들의 이익과 승리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어떠한 인물이든 자기 진영의 공천을 받는다면 무조건 지지하고 상대는 적대시하는 폐해를 낳고 있다. 

  이는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무색게 하고 있다. 

  ‘국민의 뜻’이 ‘하늘의 뜻’이므로 정치를 하려는 자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진영정치로 쉽게 국민의 마음을 빼앗아 가고 있다.

  진영정치로 진영에 속한 국민으로부터 무조건 지지를 받을 수 있어 즉, 그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어 진영정치를 좋아하는 정치인들은 진영에 속하지 않는 사람, 예를 들어 중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만을 얻으면 당선될 확률이 높으므로 민심을 얻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본래 진영정치는 진보와 보수 등으로 나뉘어 경제정책, 사회정책, 국가 운영 등 다양한 영역에서 그 이념을 실현하고자 경쟁을 벌여 국민의 지지와 선택을 받아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중도적인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선택을 받고자 하고 있다. 

  이제 진영으로 나뉘어 대다수의 많은 표가 진영으로 속해져 의미 없게 되어 소수의 중도 또는 진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표가 당락을 결정하는 작은 민심은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은 정치권에 스스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투표권을 정의롭게 행사하여 국민 모두의 민심으로 천심을 만들길 바란다. 

  나아가 진영정치답지 않은 정치는 물리치고 국민을 위한 민생정치가 펼쳐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