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올려다 보며             

김정렬(본지논설위원/전)연성중교장)  

   오늘도 밝은 햇살과 함께 활기찬 아침이 오고 있다. 자전거로 한 시간여를 달리니 학교에 이른다.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 좋아서,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워 정년퇴임을 하고 찾은 소중한 일자리이다. 

매일 반복적인 자전거 타기로 피곤하고 귀찮을 법도 한데 내 마음은 늘 새로운 설렘으로 가득 찬다.  

   학교에 오자마자 교문을 활짝 열고서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다. 화분에 물도 주고 나무와 꽃과 대화도 나눈다. 

이는 마음속에 둥지를 틀려고 하는 안일함과 나태함을 멀리하고픈 나의 바람이며, 내일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극진하게 맞이하고 싶은 내 소망을 담고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노인 일자리센터에서 오신 어르신들이 “아침마다 왜 이런 일을 하세요? 먼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도 피곤할 텐데요”라는 염려스러운 말씀을 하신다. 

굽혔던 허리를 펴고서 “제 마음을 청소합니다. 특히, 오랜 기간 공직에 있으면서 누렸던 ‘특권과 예우’를 깨끗이 지우려고 합니다. 마음속에 심어 둔 꽃밭에 물도 주고요.”라며 환하게 웃어본다.  

   잠시 후, 깨끗하게 청소를 한 교문으로 아이들이 들어온다. 맑고 밝은 미소와 함께 허리를 굽히며 다정하게 인사를 한다. 

혹시라도 한 눈이라도 팔고 있으면 가까이 다가와 팔을 툭 치며 인사를 하는 ‘애어른들’도 있다. 이럴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는다. 

   사실, 나는 20대 중반부터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덕분에 매월 봉급을 받아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녀 교육도 시켰다. 

하지만 주변은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세월이라는 페달을 밟았다. 

때로는 학습지도를 핑계로 제자들을 때리기도 하고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예의 없이 대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운이 좋아 4년 동안 교감도 하고 10년 가까이 교장이라는 자리에도 있었다. 자연히 예우를 지나치게 받았다. 

이로 인해 세상을 올려다보지 못하고 내려다보는 태도가 몸에 배었다. 

천여 명의 학생들이 나를 좋은 스승으로 존경하고, 육십여 명의 교직원들이 나를 윗사람으로 여기며, 학부형들도 나를 신뢰하고 좋아한다는 착각 속에서 살았다. 

‘학교장이라는 관복(官服)’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나의 ‘지도력과 덕망’ 때문이라고 알고 지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부끄러울 뿐이다. 

   이제는 ‘교장이라는 관복’ 대신에 학교에서 ‘배움터 지킴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교직원, 조리종사원, 숙직원, 화장실 청소원, 유치원생, 초등학생, 일자리 노인들, 그리고 학부모님들…… 모두 내가 섬겨야 할 소중한 분들이다. 

방문객들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는지, 자원봉사 어르신들께 예우를 다하고 있는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는지, 학부형님들께 존경과 신뢰감을 주고 있는지, 학교에 누(累)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반성이라는 거울’을 본다. 

   세상을 올려다보니 ‘마음의 문’이 맑아져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인사를 잘한다는 칭찬’을 학부형들과 어른들로부터 듣기도 하고, ‘감사의 편지’를 초등학교 1,2학년들로부터 받기도 한다. 

유치원 아이들로부터 배꼽인사를 받으면서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졸업생들로부터 예쁜 꽃과 함께 ‘감사의 편지’를 받고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명예는 공직자의 몸에서 나오는 향기인 것 같다. 공직자로서 처신을 잘하면 향기가 나지만 그렇지 못하면 역겨운 냄새가 날 수도 있다. 고위직에 있었다고 좋은 향기가 날 수는 없다. 

더 더욱이나 은퇴 이후에도 돈이나 권력만을 추구한다면 공직자가 가질 수 있는 명예마저 포기한 셈이다.

   김수한 추기경, 성철 스님, 장기려 박사, 이태석 신부, 유일한 회장 등과 같은 분들은 생전에 권력과 부를 탐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사후에 우리 모두의 큰 스승으로 남아 계신다. 

   바삐 움직이다 보니 오늘 하루도 또 지나간다.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 운동장이 다시 쓸쓸하게 보인다. 

서둘러 안전모를 쓰고 자전거 위에 오른다. “퇴직을 하면 교육자로서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돈이 안 되는 일만 하겠다”는 퇴임전의 다짐을 되새겨 본다. 

내려다보는 세상도 아름답지만, ‘올려다보는 세상’이 더욱 아름답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자전거 발판을 힘껏 밟아 본다.

 (P.S. 지인들에게 이글로 안부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