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렬(논지논설위원/전)연성중교장) 

     30여 년 전 섬에 있는 학교로 발령을 받아 학교 주변에서 방을 얻어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가끔 주인집 아주머니와 아내 사이가 좋지 않아 애를 먹곤 했다. 

    주인집은 딸만 여섯이고 우리 집은 아들만 둘이었으니, 자주 부러움이 시기심으로 변하여 말다툼으로 이어지곤 했다. 

    요즘은 딸이 최고라지만 그 당시의 문화적 정서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때론 감정이 격해지면 아내는“우리 딴 집으로 이사 가요”라고 했고, 집주인 역시“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 때마다 나는“두 사람 사이가 좋아지면 이사 갈 것이니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로 상황을 정리하곤 했다.

    비온 후 땅이 단단해 진다고 했던가. 몇 달 후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두 사람 사이가 너무나 좋아졌고 그 덕분에 이사를 갈 필요는 더더욱 없어졌다. 

    그 집에서 2년여를 살다가 육지 학교로 발령이 났다. 떠나는 날 아내와 아주머니는 서운함의 눈물을 흘리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우리는 살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끝임 없이 경험 한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도 하고, 서로 좋아하여 친구도 되고, 서로 존경하여 스승과 제자가 되기도 한다. 

    또,  직장의 상사나 부하로서 만나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와 같은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로 만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이 만나 소중한 인연을 만드는 일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이요 운명적’인 것 같다. 

    헤어지면 다시는 안 만날 것 같아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넓지 않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옷깃만 스치는 인연도 소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

    요즘 가정불화나 가족 해체로 힘겨워하는 우리 아이들을 흔히 본다. 

    부모가 갈등을 슬기롭게 봉합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다투다가 결별이라도 하게 되면, 그 결과 가장 힘든 상황이 아이들 몫이 되고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혼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이혼이나 가정 해체로 우리처럼 큰 상처를 받지 않는 것 같다. 

   태연하게 이복(step/half)형제나 부모를 소개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졌다.”라는 말로 이별을 미화하기도 하며 심지어 성대하게 ‘이혼식’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아직 이혼 문화가 일반화 되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 놓고 말하기도 어려운 정서적 한계가 있다. 

   이혼을 좋게 보지 않는 문화적 전통과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전환된 기간이 짧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이혼 가정 아이들이 서구의 이혼 가정 아이들보다 견뎌내는 힘이 부족한 편이다.

   삶이 힘들수록 인간관계를 돈독하기 위하여 용서하고 격려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당(唐)나라의 시성(詩聖)인 백낙천(白樂天)은 “우리가 살기가 어려운 것은 물이 놓여있어서도 아니고 산이 가로막아서도 아니다. 

   단지 사람이 정을 잘못주고 받는데 있다.(行路難 不在水 不在山 只在 人情 反覆間 )”라고 하였다.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주변의 물리적 환경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리는 혜안인 것 같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가 나를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하는 열쇠인 것이다. 

   정을 나누고 서로의 아픔을 보둠아 주며 배려해주는 인간다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결실의 계절만큼 우리의 마음도 성숙해져서 영글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