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김정렬(본지논설위원)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
가끔,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교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학교 앞에서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수업이 시작되었으니 빨리 교실로 들어가라고 재촉을 하면, “친구 기다려요. 함께 가려고요”라는 말을 한다.
우스갯소리로 “애야, 우정은 영원한 것이 아니란다.”라는 말을 하면서 교실로 들여보낸다.
사실, 친구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맺게 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밀접한 관계이다.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우정을 나누던 초등학교 친구, 오손도손 함께 공부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뛰어 놀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 술도 먹고 언쟁도 하면서 웃고 즐기던 어른 친구도 있다.
그러나 이제 나이 들어 보니, 자의든 타의든 우정의 울타리는 점점 좁아지고 서로 만날 수 없는 이별만 늘어가고 있다.
며칠 전,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목전에 두고 하늘나라로 가버린 친구의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보다 나이도 서너 살 아래이고 평소에 아프다는 말도 없었는데......., 항상 너털웃음으로 나를 대해주던 겉과 속이 똑 같은 친구였다.
희극배우처럼 생긴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귀찮게 여겨 마다하는 일을 도맡아하면서 기인처럼 살다가 간 친구였다.
특히, 무분별한 계발로 신음하는 고향산천을 지키겠다고 문화회장의 감투를 쓰고, 있는 돈 없는 돈 아끼지 않고 봉사를 실천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직장에서 은퇴하고 자존감도 약해지고 대인관계도 소원해져 삶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면 ”형은 그 점이 탈이야.
철이 너무 들었어. 나처럼 철이 없이 살아. 무엇이 부족하여 그런 말을 하시는가. “라면서 껄껄 웃었다. 그리고서는 자기 웃음소리를 따라해 보라고 했다.”하하하하, 나는 행복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어미제비가 새끼를 길들이 듯이.
모든 인간은 잠재적 장애인이고 잠재적 망인(亡人)이다. 많이 배워서 콧대 높은 사람도, 가진 것이 많아 교만을 떠는 사람도, 힘 있는 권력자도, 죽음 앞에서는 평범하고 겸손해진다.
날고뛰어도 하늘을 뚫을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살던 도인(道人)같은 친구가 가을을 남기고 내 곁을 떠났다.
그는 나의 순수한 공기이고, 고독이며 빵이고 약이며 정신치료사였다, 자기 자신의 쇠사슬은 풀지 못해도 나의 구원자였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그는 귀천(歸天) 했지만 고향에 무수한 선행과 역사의 족적을 남겼다.
법이 없어도 되는 사람,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권력과 부 앞에서도 당당했던 사람 ……. 후세들이 그의 업적을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 더욱 아름다운 고장을 만들어 갈 것이다.,
중국 작가 임어당(林語堂1895-1976)은 “인간은 누구나 늙고 죽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억지로 자연에 대해서 반항할 필요는 없다. 우아하게 늙어 가는 것이 좋다.
인생의 교향악은 평화, 정밀(靜謐),안락, 정신적 만족의 위대한 피날레를 가지고 끝나야한다,”고 했다.
그런 삶을 살다가 가을을 남기고 떠나버린 그 친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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